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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R DAC vs 델타시그마 DAC, 무엇이 실제로 달라질까

DAC 방식 논쟁이 반복되는 이유

오디오 커뮤니티에서 R-2R DAC와 델타시그마 DAC의 비교는 주기적으로 반복됩니다. 한쪽에서는 R-2R의 자연스러운 음색을 이야기하고, 다른 쪽에서는 델타시그마의 낮은 노이즈 플로어와 측정 수치를 내세웁니다. 두 진영이 각자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두 방식이 실제로 다른 구조로 작동하고, 그 차이가 신호 처리 방식과 청감 특성 모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두 방식이 어떻게 다르게 동작하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방식의 차이를 모른 채 청감 비교만 하면 결국 개인 취향 논쟁에 머물게 됩니다.

R-2R 래더 DAC 회로 기판 저항망
R-2R 래더 구조는 정밀한 저항망으로 디지털 신호를 직접 아날로그로 변환합니다.
회로의 정밀도가 곧 변환 품질을 결정합니다.



R-2R DAC의 작동 구조

R-2R DAC는 래더(ladder) 구조라고도 불립니다. 이름 그대로 R과 2R, 두 종류의 저항을 사다리 형태로 연결한 저항망(resistor ladder)을 통해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합니다. 입력되는 디지털 비트 각각이 저항망의 특정 노드에 연결되며, 각 비트의 가중치에 따라 전류가 합산되어 최종 아날로그 전압이 출력됩니다.

이 구조의 핵심은 변환 과정에서 오버샘플링이나 노이즈 셰이핑 없이 입력 신호를 직접 처리한다는 점입니다. NOS(Non-OverSampling) 방식으로 운용할 경우, 입력된 PCM 데이터를 샘플레이트 변환 없이 그대로 변환합니다. 디지털 필터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필터가 신호에 가하는 시간 영역의 변형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R-2R 방식의 가장 큰 약점은 저항 정밀도입니다. 변환 정확도는 저항망 내 모든 저항값의 매칭 정밀도에 직접 의존합니다. 16비트 변환의 경우 최하위 비트(LSB)와 최상위 비트(MSB) 사이의 가중치 비율이 1:32768에 달합니다. 저항 오차가 0.01%만 발생해도 선형성 오류(linearity error)로 이어질 수 있으며, 비트 수가 높아질수록 요구되는 정밀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집니다. 고정밀 R-2R DAC의 제조 비용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델타시그마 DAC의 작동 구조

델타시그마 DAC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이 방식은 입력된 멀티비트 PCM 신호를 대량의 오버샘플링과 노이즈 셰이핑을 통해 1비트 또는 소수 비트의 고속 펄스열로 변환합니다. 이 펄스열이 저역통과 필터를 통과하면 원래의 아날로그 신호가 복원됩니다.

델타시그마 DAC 칩 오버샘플링 노이즈쉐이핑
델타시그마 방식은 높은 오버샘플링과 노이즈 셰이핑으로 가청 대역의 노이즈를 최소화합니다.


오버샘플링(oversampling)은 입력 신호의 샘플레이트를 수십에서 수백 배로 높이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44.1kHz 입력 신호를 내부적으로 2.8224MHz(64배)로 처리합니다. 샘플레이트가 높아지면 양자화 노이즈가 더 넓은 주파수 대역에 분산되어 가청 대역(20Hz~20kHz) 내의 노이즈 에너지가 줄어듭니다. 노이즈 셰이핑은 이 노이즈를 가청 대역 밖의 고주파 영역으로 의도적으로 밀어내는 기술입니다.

결과적으로 델타시그마 DAC는 노이즈 플로어와 THD+N(전고조파 왜곡 + 노이즈) 수치에서 R-2R 방식을 대부분의 측정 환경에서 앞섭니다. ESS Sabre 계열 칩이 측정값 기준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이 구조적 특성에서 비롯됩니다. 단, 노이즈 셰이핑으로 고주파 대역에 집중된 노이즈는 아날로그 출력단 이후의 회로 설계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필터 설계가 함께 중요해집니다.


디지털 필터와 시간 영역 특성

두 방식의 청감 차이를 이해하는 데 디지털 필터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델타시그마 DAC는 대부분 디지털 재건 필터(reconstruction filter)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이 필터는 샘플링 주파수의 절반(나이퀴스트 주파수) 위로 발생하는 에일리어싱(aliasing) 성분을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이 필터가 주파수 영역뿐 아니라 시간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필터, 특히 선형 위상 필터는 임펄스 응답(impulse response)에서 프리링잉(pre-ringing)을 발생시킵니다. 프리링잉이란 입력 신호가 도달하기 전에 작은 진동이 먼저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인과율(causality)상 실제 아날로그 신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성질입니다. 이 프리링잉이 과도 신호(트랜지언트)의 선명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과, 실제 청감에서 감지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최소 위상 필터는 프리링잉을 없애는 대신 포스트링잉(post-ringing)을 발생시키며, 군지연(group delay) 특성이 달라져 주파수별 도달 시간에 차이가 생깁니다. 일부 DAC 제조사는 여러 필터 모드를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데, 이는 타협 없는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방향이든 완전히 무해한 필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NOS 방식의 R-2R DAC는 이 디지털 재건 필터를 생략합니다. 프리링잉과 포스트링잉 모두 발생하지 않지만, 대신 이미지 주파수(image frequency)가 억제되지 않아 가청 대역 외 성분이 남을 수 있습니다. 또한 44.1kHz 신호를 그대로 처리할 때 발생하는 샘플-앤-홀드(sample-and-hold) 효과로 인해 고주파 응답이 롤오프됩니다. 20kHz 근방에서 약 -3.9dB의 감쇠가 이론적으로 발생합니다. 이 고역 롤오프를 자연스러운 음색으로 받아들이는 사용자가 있는 반면, 해상도 손실로 인식하는 사용자도 있습니다.


측정값과 청감 사이의 거리

ESS Sabre 계열 DAC 칩은 SINAD(신호 대 잡음 및 왜곡비) 기준으로 120dB 이상의 수치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Analog Devices의 AD1955나 Texas Instruments의 PCM계열 칩도 측정 수치에서는 일관되게 우수한 성능을 보입니다. 반면 R-2R 방식은 동일 가격대에서 측정 수치가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THD 수치가 델타시그마 대비 높게 나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측정 환경과 청취 환경은 다릅니다. 측정에 사용되는 단일 주파수 정현파 신호와 실제 음악 신호는 성질이 다르며, 측정값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소리로 인식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청감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왜곡의 크기뿐 아니라 왜곡의 성질, 주파수별 분포, 시간적 일관성 등 다양합니다. 이 부분이 측정값 중심의 평가와 청감 중심의 평가 사이에 괴리가 지속되는 구조적 이유입니다.

다만 이 점을 이유로 측정값을 무시하는 것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THD가 매우 높거나 노이즈 플로어가 높은 DAC는 청감에서도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측정값이 일정 수준 이상인 기기들 사이의 차이를 논할 때 청감 성향이 중요해지는 것이지, 측정값 자체를 무관하게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청감에서 실제로 어떻게 다른가

R-2R DAC와 델타시그마 DAC를 같은 시스템에서 비교할 때 일관되게 보고되는 경향이 몇 가지 있습니다. 단, 이 차이는 기기 구현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방식 자체의 차이라기보다 방식이 가져오는 경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R-2R 방식, 특히 NOS 구성의 경우 과도 응답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타악기 어택이나 피아노 건반의 초기 타격음이 깔끔하게 분리되어 들린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필터 링잉이 없는 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트랜지언트 앞뒤의 불필요한 성분이 적다는 의미입니다. 중역의 밀도감도 높게 느껴진다는 보고가 많은데, 이것이 실제 중역 에너지의 차이인지 아니면 고역 롤오프로 인한 상대적 강조인지는 시스템과 소스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DAC 비교 청취 테스트 데스크탑 오디오 시스템
두 방식의 차이는 스펙 시트보다 실제 청취 환경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델타시그마 방식은 노이즈 플로어가 낮아 조용한 음악이나 소편성 곡에서 배경의 고요함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상도 표현, 특히 음장 내 악기 분리도와 공간감은 측정 수치가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실제 청감에서도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ESS Sabre 계열 칩은 특유의 밝고 선명한 경향이 있으며, 고역이 강조되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이 성향이 시스템 전체와 어떻게 맞물리느냐에 따라 강점이 되기도 하고 과잉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AKM(Asahi Kasei Microelectronics) 계열 칩은 델타시그마 방식이지만 ESS 계열과는 다른 경향을 보입니다. 고역의 자극이 적고 중역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는 평가가 많아 R-2R와 델타시그마의 중간 성향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방식이 같아도 칩 설계에 따라 청감 성향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방식만으로 청감을 단정하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입니다.


구현 수준이 방식 차이보다 클 때

방식 논쟁에서 종종 간과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DAC 칩 방식의 차이보다 아날로그 출력단 설계, 전원 공급 품질, 클록 정밀도가 최종 소리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저가형 R-2R DAC와 잘 설계된 고급 델타시그마 DAC를 비교하면 방식 차이가 아니라 구현 수준의 차이가 소리를 결정합니다. 반대로 고급 R-2R DAC와 저가형 델타시그마 DAC를 비교해도 결론은 같습니다. Denafrips Ares II, Schiit Bifrost 2/64 같은 현대 R-2R DAC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방식 때문만이 아니라, 저항 매칭 정밀도와 아날로그 출력단 설계 수준에 있습니다. 델타시그마 방식이라도 Chord Electronics처럼 독자적인 FPGA 기반 필터 설계로 시간 영역 특성을 최적화한 제품들은 기존 방식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수준의 성능을 보여줍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느 방식이 유리한가

R-2R 방식이 유리한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재즈, 클래식, 소편성 어쿠스틱 음악처럼 자연스러운 악기 질감과 트랜지언트 표현이 중요한 장르에서 R-2R의 성향이 잘 부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스템 전체가 중립 또는 밝은 성향일 때 R-2R의 부드러운 고역이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다만 측정 수치를 우선시하는 엔지니어링 관점에서는 R-2R를 선호하는 명확한 수치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델타시그마 방식은 팝, 록, 전자음악처럼 정밀한 공간 표현과 분리도가 청취 경험에 영향을 주는 장르에서 강점을 발휘합니다. 낮은 노이즈 플로어는 다이나믹이 넓은 음원에서 조용한 부분의 표현을 선명하게 유지합니다. 측정값 기반의 검증을 중요시하는 사용자에게는 델타시그마가 논리적으로 선택하기 쉬운 방향입니다.

두 방식 모두에서 피해야 할 것은 방식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같은 방식 안에서도 칩 종류, 필터 설정, 아날로그 회로 설계에 따라 소리는 크게 달라집니다.



정리

R-2R DAC와 델타시그마 DAC의 차이는 어느 쪽이 더 좋은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두 방식은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하는 경로가 다르고, 그 경로에서 발생하는 오류의 성질과 필터 특성이 다르며, 결과적으로 청감에서 드러나는 경향도 다릅니다.

R-2R는 오버샘플링과 디지털 필터 없이 직접 변환하는 구조에서 필터 링잉이 없는 트랜지언트 표현이 가능하지만, 저항 정밀도 확보가 핵심 과제입니다. 델타시그마는 오버샘플링과 노이즈 셰이핑으로 측정 수치를 높이지만, 디지털 필터 설계가 시간 영역 특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느 쪽이든 DAC 칩 방식보다 구현 수준이 최종 소리를 더 크게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스템을 구성할 때 방식을 먼저 고를 것이 아니라, 원하는 청감 성향과 예산 범위 안에서 구현 수준이 검증된 기기를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나은 접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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