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C를 처음 장만하고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필터 설정 메뉴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Sharp, Slow, NOS, Linear Phase, Minimum Phase 같은 이름들이 늘어서 있는데, 설명서를 봐도 뭔 소리인지 와닿지 않습니다. 그냥 기본값으로 두면 되는 건지, 바꾸면 뭔가 달라지기는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달라집니다. 다만 극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질감과 고역의 느낌, 어택감에서 미세한 차이가 생깁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어떤 음악에서 더 잘 느껴지는지를 차근차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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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DAC가 여러 종류의 디지털 필터를 제공하지만 실제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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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필터가 왜 필요한가
DAC가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할 때 오버샘플링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44.1kHz로 샘플링된 음원을 그대로 변환하면 가청 주파수 대역 밖에 이미지 성분이라는 불필요한 신호가 생깁니다.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 디지털 저역통과 필터를 사용합니다. 이 필터가 어떻게 설계되었느냐에 따라 Sharp, Slow 같은 구분이 생깁니다.
오버샘플링은 원본 샘플 사이에 새로운 값을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채워 넣는 방식입니다. 44.1kHz 음원을 8배 오버샘플링하면 352.8kHz로 처리됩니다. 샘플 간격이 촘촘해지면 이후 아날로그 필터의 부담이 줄어들고 변환 품질이 올라갑니다. 여기서 샘플 사이를 어떻게 채워 넣는지, 그리고 이미지 성분을 어떻게 제거하는지가 필터 특성의 핵심입니다.
필터 설계는 주파수 영역과 시간 영역 두 가지 측면에서 트레이드오프가 있습니다. 주파수 응답을 깔끔하게 만들려면 시간 영역에서 희생이 생기고, 시간 영역 응답을 좋게 하려면 주파수 응답이 다소 완만해집니다. Sharp와 Slow 필터의 차이가 이 트레이드오프를 어느 방향으로 설계했느냐의 문제입니다.
Sharp 필터 — 깔끔한 주파수 응답, 그 대가
Sharp 필터는 이름처럼 차단 특성이 급격합니다. 가청 주파수 대역 끝인 20kHz 이후로 이미지 성분을 빠르게 제거합니다. 주파수 응답만 보면 가장 이상적으로 보입니다. 가청 대역 안에서 응답이 평탄하고 불필요한 성분이 깔끔하게 제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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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rp 필터와 Slow 필터는 고역 차단 특성과 시간 영역 응답에서 서로 다른 방향의 트레이드오프를 가집니다. |
그런데 이 급격한 차단이 시간 영역에서 문제를 만듭니다. 필터의 차단 특성이 급격할수록 임펄스 응답에서 링잉이 발생합니다. 링잉은 순간적인 신호 앞뒤로 작은 진동이 붙는 현상입니다. 드럼 히트나 피아노 어택처럼 순간적으로 강한 신호 앞뒤에 실제로는 없어야 할 작은 파형이 붙습니다. 특히 Pre-ringing이라는 신호가 오기 전에 붙는 링잉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라 어색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귀로는 이것이 어택이 약간 부드럽거나 타격감이 흐릿한 느낌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고역이 선명하고 해상도가 높다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Sharp 필터가 더 디지털스럽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는데, Pre-ringing의 부자연스러움이 그 인상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Linear Phase 방식의 Sharp 필터는 Pre-ringing과 Post-ringing이 대칭적으로 나타납니다. Minimum Phase 방식은 Pre-ringing을 줄이는 대신 Post-ringing이 더 길게 남습니다. Post-ringing은 자연계에도 잔향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Minimum Phase 방식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두 방식 모두 Sharp 필터 계열이지만 링잉의 시간 분포가 다릅니다.
Slow 필터 — 링잉을 줄인 대신 고역이 먼저 내려옵니다
Slow 필터는 차단 특성이 완만합니다. 이미지 성분을 제거하는 과정이 부드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링잉이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순간적인 신호의 어택이 더 깔끔하게 재생되고 타격감이 살아납니다. 드럼 킥의 어택이나 피아노 건반을 세게 누르는 순간이 더 선명하고 자연스럽게 들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신 주파수 응답에서 트레이드오프가 생깁니다. 차단이 완만하기 때문에 20kHz 이전부터 고역이 서서히 내려갑니다. 16kHz부터 조금씩 감쇠가 시작되어 20kHz 근방에서는 꽤 낮아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Slow 필터에서 고역이 약하다거나 소리가 약간 어둡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입니다.
고역 감쇠가 실제로 들리는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20대의 청력이 좋은 사람은 16kHz 이상의 감쇠를 인식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고역 청력이 떨어져 이 차이를 인식하기 어려워집니다. 또한 대부분의 음악 정보는 16kHz 이하에 집중되어 있어 Slow 필터의 고역 감쇠가 음악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실제로 Slow 필터를 선호하는 청취자가 적지 않고, 어택감이 중요한 재즈나 어쿠스틱 음악에서 더 자연스럽다는 평이 많습니다.
NOS 필터 — 필터 자체를 없애는 선택
NOS는 Non-Oversampling의 약자입니다. 오버샘플링과 디지털 필터를 아예 사용하지 않고 원본 샘플 데이터를 그대로 변환하는 방식입니다. 링잉이 없고 어택이 가장 직접적으로 재생됩니다. 디지털 처리에 의한 인공적인 질감이 최소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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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S 필터는 디지털 보간 처리를 생략해 계단형 파형을 그대로 출력하며 아날로그 회로의 역할이 더 커집니다. |
대신 원래 DAC가 디지털 필터로 제거했던 이미지 성분이 그대로 출력됩니다. 44.1kHz 음원에서 44.1kHz 근방에 이미지 성분이 존재하고, 이것이 아날로그 회로를 거치면서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NOS DAC에서는 아날로그 출력 단의 자연스러운 롤오프와 앰프, 스피커의 주파수 특성이 이 이미지 성분을 어느 정도 걸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주파수 응답을 측정하면 NOS에서 고역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내려갑니다. 44.1kHz 기준으로 20kHz 근방에서 이미 3dB 이상 감쇠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측정값만 보면 가장 불리한 방식처럼 보이지만, 실제 청취에서 NOS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리의 질감이 가장 아날로그에 가깝고 자연스럽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이 측정과 청감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NOS 방식은 DAC 칩셋의 지원 여부에 따라 모든 제품에서 선택 가능하지 않습니다. 일부 DAC는 별도 NOS 모드를 메뉴에서 선택할 수 있고, 아예 NOS 방식만을 채택한 DAC도 있습니다. NOS 전용 DAC는 아날로그 출력 단 설계에 더 공을 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디지털 필터로 처리했던 역할을 아날로그 회로가 대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필터가 자신에게 맞는가
필터 선택에 정답은 없습니다. 같은 필터도 사람마다, 시스템마다, 음악 장르마다 다르게 느껴집니다. 다만 경향성은 있습니다.
어택감과 타격감이 중요한 음악, 재즈 드럼이나 어쿠스틱 기타, 클래식 피아노를 주로 듣는다면 Slow 필터나 Minimum Phase 계열이 더 잘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간적인 신호의 재현이 더 자연스럽고 링잉에 의한 부자연스러움이 줄어듭니다.
반대로 고역의 선명도와 해상도 느낌을 중시한다면 Sharp 필터 쪽이 더 맞을 수 있습니다. 현악기의 배음이 선명하게 뻗어나가는 느낌이나 전자 음악의 하이햇이 또렷하게 들리는 인상이 Sharp 필터에서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NOS는 중간 단계 없이 바로 시도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론적인 설명보다 실제로 들어보면 자신이 이 방향의 소리를 좋아하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처음에는 고역이 약하다는 인상을 받지만, 잠시 듣다 보면 오히려 더 편하고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오기도 합니다.
필터 변경이 효과 있는 시스템과 그렇지 않은 경우
필터 차이를 실제로 인식하려면 시스템의 해상도가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합니다. 블루투스 이어폰이나 저가 스피커 환경에서는 필터 차이가 시스템 자체의 특성에 묻혀 거의 인식되지 않습니다. 중급 이상의 DAC와 앰프, 그리고 해상도가 좋은 헤드폰이나 스피커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차이가 더 분명하게 들립니다.
음원 품질도 중요합니다. 128kbps MP3에서는 필터 차이보다 압축 아티팩트가 훨씬 크게 들립니다. 로스리스 이상의 음원을 사용할 때 필터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 의미 있습니다.
필터를 바꿀 때는 음량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필터에 따라 출력 레벨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있고, 음량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더 큰 쪽이 더 좋게 들리는 심리적 효과가 생깁니다. 같은 음량에서 비교하는 것이 정확한 판단의 전제입니다.
자신의 DAC에 필터 선택 기능이 있다면 한 번쯤 직접 바꿔보는 것을 권합니다. 잘 아는 음악을 기준으로 Sharp와 Slow를 번갈아 들으면서 어택감과 고역 질감의 차이를 확인해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이론적으로 어느 쪽이 좋다는 정답보다, 자신의 시스템과 자신의 귀가 어떤 방향을 편하게 받아들이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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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 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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