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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필터는 소리를 바꾸는가-pcfi오디오와 Dac필터의 관계

필터 설정이 소리를 바꾼다는 것

DAC 제품 중 일부는 사용자가 필터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Sharp, Slow, Linear Phase, Minimum Phase, NOS 같은 이름으로 표기되는 선택지들입니다. 처음 이 기능을 접하는 사람은 어떤 설정이 더 좋은지, 그리고 실제로 소리가 달라지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어디서 오는 것인지도 불분명합니다.

디지털 필터가 소리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영향의 성질과 크기는 필터 종류에 따라 다르고, 시스템과 소스에 따라 감지 여부가 달라집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디지털 필터가 어떤 이유로 필요하고 어떻게 동작하는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디지털 오디오 필터 임펄스 응답 파형
필터의 특성은 임펄스 응답으로 가장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리링잉과 포스트링잉의 형태가 필터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디지털 오디오에 필터가 필요한 이유

디지털 오디오는 연속된 아날로그 신호를 일정 간격으로 샘플링해 수치로 저장합니다. 이때 샘플링 주파수의 절반, 즉 나이퀴스트 주파수(Nyquist frequency)를 넘는 신호 성분이 존재하면 에일리어싱(aliasing)이 발생합니다. 에일리어싱은 고주파 성분이 가청 대역 내의 다른 주파수로 접혀 들어와 원음에 없던 왜곡 성분을 만드는 현상입니다. 44.1kHz 샘플레이트 기준으로 22.05kHz 이상의 성분이 에일리어싱의 원인이 됩니다.

녹음 단계에서는 안티에일리어싱 필터(anti-aliasing filter)가 나이퀴스트 주파수 이상의 성분을 사전에 제거합니다. 재생 단계에서는 재구성 필터(reconstruction filter)가 동일한 역할을 합니다. DAC가 샘플링된 데이터를 아날로그로 변환할 때, 원래 신호에 없던 이미지 주파수(image frequency) 성분이 나이퀴스트 주파수 위에 생성됩니다. 재구성 필터는 이 이미지 성분을 제거하고 원래의 연속 파형을 복원합니다. 디지털 필터는 이 재구성 과정의 핵심 요소입니다.


오버샘플링이 필터 설계에 미치는 영향

오버샘플링 없이 44.1kHz 신호를 그대로 처리하면 재구성 필터는 20kHz 근방에서 22.05kHz 사이, 즉 불과 2kHz 폭 안에서 이미지 성분을 급격하게 억제해야 합니다. 이렇게 좁은 천이 대역(transition band)을 구현하려면 필터의 차수를 매우 높여야 하고, 그 결과 군지연(group delay) 특성이 불균일해지거나 임펄스 응답에서 과도한 링잉이 발생합니다. 아날로그 재구성 필터를 사용하면 위상 특성이 복잡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DAC 오버샘플링 주파수 스펙트럼 분석
오버샘플링은 양자화 노이즈를 넓은 대역에 분산시키고, 재구성 필터의 설계 조건을 완화합니다.


오버샘플링은 이 문제를 완화하는 방법입니다. 입력 신호를 디지털 영역에서 수십 배로 업샘플링하면 이미지 주파수가 훨씬 높은 주파수 대역으로 밀려납니다. 예를 들어 8배 오버샘플링하면 44.1kHz 신호의 이미지는 352.8kHz 근방에 나타납니다. 이 경우 재구성 필터는 20kHz에서 352kHz 사이, 즉 매우 넓은 천이 대역에서 동작할 수 있어 필터 설계가 크게 단순해집니다. 낮은 차수의 필터로도 충분한 억제가 가능해지고, 위상과 군지연 특성이 더 균일해집니다.

현대 대부분의 DAC 칩은 오버샘플링과 디지털 재구성 필터를 내장합니다. 오버샘플링 비율은 칩에 따라 다르지만 64배에서 256배 수준이 일반적입니다. 이 오버샘플링 비율이 높을수록 아날로그 출력단의 필터 설계 부담이 줄어들고, 아날로그 필터를 매우 단순하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선형 위상 필터의 구조와 프리링잉

디지털 재구성 필터는 크게 선형 위상(linear phase) 필터와 최소 위상(minimum phase) 필터로 나뉩니다. 두 방식은 주파수 영역에서 동일한 진폭 응답을 가질 수 있지만, 시간 영역에서 동작 방식이 다릅니다.

선형 위상 필터는 모든 주파수 성분을 동일한 시간만큼 지연시킵니다. 군지연이 주파수에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특성은 복잡한 음악 신호에서 주파수 성분 간의 시간 관계를 보존하는 데 유리합니다. 그러나 선형 위상 필터는 인과적이지 않은(non-causal) 특성을 갖습니다. 임펄스 입력에 대해 응답이 입력 이전 시간에도 나타나는 프리링잉(pre-ringing)이 발생합니다. 자연계의 어떤 아날로그 신호에도 존재하지 않는 현상입니다.

프리링잉의 크기는 필터의 감쇠 특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급격하게 감쇠하는 Sharp 필터(혹은 Fast 필터라 표기되기도 합니다)는 나이퀴스트 주파수 위의 성분을 강력하게 억제하지만 프리링잉의 진폭과 지속 시간이 더 큽니다. 완만하게 감쇠하는 Slow 필터는 프리링잉이 작지만 나이퀴스트 주파수 바로 아래의 고역 응답이 일부 감쇠됩니다. 필터 설계는 이 두 가지 사이의 균형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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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위상 필터의 구조와 포스트링잉

최소 위상 필터는 프리링잉을 제거합니다. 응답이 입력 이전 시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신 포스트링잉(post-ringing)이 발생합니다. 임펄스 이후에 감쇠하는 진동이 뒤따르는 형태입니다. 포스트링잉은 자연계의 물리적 공명 현상과 유사한 성질을 갖습니다. 악기 몸통의 잔향이나 공간 반사음도 신호 이후에 에너지가 감쇠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뇌가 포스트링잉을 프리링잉보다 더 자연스럽게 처리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최소 위상 필터의 또 다른 특성은 군지연이 주파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저주파 성분과 고주파 성분이 서로 다른 시간만큼 지연되어 출력됩니다. 이 위상 왜곡이 음장 표현에 영향을 준다는 견해와, 인간의 청각이 이 수준의 위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견해가 공존합니다.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영역입니다.


NOS 방식과 필터 없는 재생

NOS(Non-OverSampling) 방식은 오버샘플링과 디지털 재구성 필터를 모두 생략합니다. 입력된 PCM 데이터를 샘플레이트 변환 없이 DAC에서 직접 처리합니다. 프리링잉도 포스트링잉도 발생하지 않으며, 군지연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나 NOS 방식에는 구조적인 트레이드오프가 있습니다. 오버샘플링이 없으므로 이미지 주파수가 나이퀴스트 주파수 위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44.1kHz 신호를 NOS로 처리하면 22.05kHz부터 44.1kHz 사이에 이미지 성분이 나타납니다. 이 성분이 가청 대역 밖이라도 아날로그 출력단과 후속 회로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샘플-앤-홀드(sample-and-hold) 효과로 인해 주파수 응답이 sinc 함수 형태로 롤오프됩니다. 20kHz 근방에서 이론적으로 약 -3.9dB의 감쇠가 발생합니다.

이 고역 롤오프를 자연스럽고 피로감 없는 재생으로 받아들이는 사용자도 있고, 고역 해상도의 손실로 인식하는 사용자도 있습니다. NOS DAC가 자연스럽고 아날로그적으로 들린다는 평가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필터 링잉이 없는 깔끔한 트랜지언트 표현에 있지만, 동시에 고역 특성의 변화가 음색 성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Chord Electronics의 접근 방식

디지털 필터 설계에서 독자적인 방향을 취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Chord Electronics입니다. Chord의 DAC 제품들은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를 사용해 일반 DAC 칩의 내장 필터 대신 자체 설계한 WTA(Watts Transient Aligned) 필터를 구현합니다.

Chord의 필터는 일반적인 디지털 필터보다 훨씬 높은 탭 수(tap count)를 사용합니다. Hugo 2의 경우 49,152탭, Dave는 164,000탭 이상을 사용합니다. 탭 수가 높을수록 필터의 주파수 분해능이 높아지고, 임펄스 응답에서 링잉을 더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습니다. Chord는 이 접근 방식이 시간 영역 정확도를 개선해 음장 표현과 트랜지언트 재현에서 차이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측정값보다 설계 철학에서 차별화를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트랜지언트와 공간감에서의 청감 영향

디지털 필터의 차이가 청감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영역은 트랜지언트 표현과 음장의 안정감입니다.

DAC 필터 설정 비교 청취 오디오 시스템
같은 DAC에서도 필터 모드를 바꾸면
트랜지언트의 선명도와 공간감이 달라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트랜지언트 측면에서 프리링잉의 영향은 주로 타악기나 피아노의 어택 표현에서 감지됩니다. 선형 위상 Sharp 필터에서 어택 직전에 미세한 사전 에너지가 느껴지는 현상이 보고되는데, 이것이 어택의 선명도를 흐리거나 타격감을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반면 최소 위상 필터나 NOS 방식에서는 어택이 더 선명하게 분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차이가 청감에서 실제로 감지 가능한 수준인지는 시스템의 해상도와 소스의 성질에 달려 있습니다.

공간감과 음장 표현은 군지연 특성의 균일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선형 위상 필터는 군지연이 일정해 주파수 성분 간의 시간 관계가 보존되고, 스테레오 이미징에서 정위감이 안정적으로 표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소 위상 필터는 저역에서 위상이 앞서고 고역에서 뒤따르는 특성이 생겨, 음장의 입체감이 다르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원음에 더 가까운가보다 어떤 표현 방식이 해당 시스템에서 더 자연스럽게 들리는가로 판단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필터 차이가 실제로 유의미한가

디지털 필터의 차이가 청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 영향의 크기가 항상 가청 임계치 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품질 DAC에서 필터 모드를 바꿨을 때 차이를 느끼는 사용자도 있고, 유의미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용자도 있습니다. 이중맹검(ABX) 테스트에서 필터 차이를 일관되게 구분하는 것은 예상보다 어렵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 현상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필터가 만드는 차이는 미세하고, 다른 시스템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변수가 훨씬 큰 경우가 많습니다. 앰프의 음색 성향, 스피커의 특성, 공간 음향이 필터 차이를 압도하는 상황에서는 필터 선택의 영향이 묻히게 됩니다. 반대로 시스템 전체의 해상도가 높고 청취 환경이 잘 정돈된 경우에는 필터 차이가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필터 선택이 의미를 가지려면 먼저 시스템의 다른 요소들이 충분한 수준에 있어야 합니다. 저해상도 시스템에서 필터 모드를 바꾸는 것은 우선순위가 낮습니다.


정리

디지털 필터는 소리를 바꿉니다. 다만 그 방식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선형 위상 필터는 군지연 일관성을 유지하지만 프리링잉을 발생시키고, 최소 위상 필터는 프리링잉을 제거하지만 군지연이 불균일해지고 포스트링잉이 뒤따릅니다. NOS 방식은 링잉 자체를 없애지만 고역 롤오프와 이미지 주파수 문제를 안고 갑니다. 어느 방식도 완전히 무해하지 않으며, 각 방식은 서로 다른 트레이드오프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 차이가 청감에서 얼마나 유의미하게 나타나는지는 시스템의 해상도, 청취 환경, 소스의 성질에 따라 달라집니다. 필터 선택을 시스템 조율의 마지막 단계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인 순서이며, 그 이전에 전원부, 클록 정밀도, 아날로그 출력단의 수준이 먼저 갖춰져야 필터의 차이가 의미 있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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