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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fi 입문자를 위한 현실적인 예산 가이드

GentlemanVibe

모르던 나의 취향이 일상의 취미로 새겨지는 시간의 기록


여러 오디오 기기를 구매하고 되팔고 또 다시 구매하면서 느꼈습니다. 

어제는 잡음으로 들리던 소리가 오늘은 명쾌하게 들리기도 하고 이전엔 몰랐던 소리가 갑자기 나오기도 하는 경험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언제인가 부터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서점에서 이런저런 오디오 서적을 뒤적이고, 음향기기 매장에서 수도 없이 고르기도하면서 부족함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편의 지난 포스트를 통해 정말 오디오에 관심이 있지 않고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글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이제 이런 글들 이후 직접 구매하는 최종의 단계에서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나만의 PCfi 또는 오디오를 오래오래 즐기는것으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LP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리며 단촐한 오디오 시스템 앞에 앉아 있는 사람
음악 감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비의 규모가 아니라,
이렇게 음악과 마주하는 태도입니다. PCfi 역시 복잡한 시스템보다,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음악을 시작할 수 있는지가 더 큰 차이를 만듭니다.


PCfi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으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질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를 써야 하는 걸까?" 인터넷을 검색하면 답은 더 복잡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50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최소 200만 원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포럼에 가면 수백만 원짜리 장비 이야기가 오가고, 유튜브에서는 입문용이라며 100만 원대 세팅을 추천합니다.

그러다 보면 혼란스러워집니다. 내가 생각했던 예산이 너무 적은 건 아닐까? 이 정도 돈으로는 제대로 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건 아닐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PCfi에서 예산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같은 100만 원이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만족도는 천차만별입니다. 이 글에서는 PCfi 입문자들이 현실적으로 예산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 그리고 각 예산대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예산을 정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들

예산을 정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명확해지면, 예산은 자연스럽게 결정됩니다.

첫 번째, 나는 어디에서 음악을 듣는가? 책상 위에서 듣는다면 작은 북셀프 스피커면 충분합니다. 거실에서 듣는다면 조금 더 큰 스피커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공간이 작을수록 예산도 줄어듭니다. 이건 타협이 아니라 효율입니다.

두 번째, 헤드폰도 함께 사용할 것인가? 만약 밤에 헤드폰으로 듣는 시간이 많다면, 스피커보다 헤드폰에 예산을 더 투자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헤드폰은 스피커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높은 음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어떤 음악을 주로 듣는가? 클래식이나 재즈처럼 디테일이 중요한 장르라면 DAC와 스피커의 해상도에 신경 써야 합니다. 팝이나 록처럼 에너지가 중요한 장르라면 앰프의 출력과 스피커의 다이내믹 레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장르에 따라 예산 배분이 달라집니다.

네 번째, 이 취미를 얼마나 오래 할 것인가? 한두 달 해보고 말 취미라면 최소한의 투자로 시작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몇 년 이상 즐길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조금 더 투자해서 나중에 업그레이드 비용을 줄이는 게 현명합니다.

이 네 가지 질문에 답하면, 막연했던 예산이 구체적인 숫자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남들의 추천이 아니라 나의 상황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의미가 있습니다.


50만 원 이하: 헤드폰 중심 or 초소형 데스크 시스템

50만 원 이하의 예산이라면, 사실 스피커 시스템보다는 헤드폰 중심으로 가는 게 더 합리적입니다. 30만 원대 헤드폰과 10만 원대 DAC/앰프 조합이면, 스피커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디테일과 분리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밤에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거나, 주변 소음이 신경 쓰이는 환경이라면 헤드폰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래도 스피커를 원한다면, 3인치 이하의 초소형 액티브 스피커를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책상 위에 놓고 가까운 거리에서 듣는다면, 작은 스피커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소리를 들려줍니다. 이 예산대에서는 DAC를 따로 구매하기보다는, USB 입력을 지원하는 액티브 스피커를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하나의 제품으로 DAC와 앰프, 스피커를 모두 해결할 수 있어서 비용도 절약되고 설정도 간단합니다.

다만 이 예산대에서는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저음의 깊이, 고음의 화려함, 넓은 사운드스테이지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보컬의 또렷함, 악기의 분리도, 전체적인 밸런스는 충분히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PCfi가 무엇인지 경험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100만 원 전후: 제대로 된 데스크 시스템의 시작

100만 원 정도의 예산이라면, 비로소 '제대로 된' 데스크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4~5인치 북셀프 스피커, 소형 파워 앰프, 그리고 USB DAC를 각각 구매할 수 있는 예산입니다. 이 정도 구성이면, 음악의 디테일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다이내믹까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산 배분은 대략 이렇게 가져가는 게 좋습니다. 엔트리 급으로 초보자용 중저가를 알차게 구매한다면 스피커에 50-60만 원, DAC에 15-20만 원, 앰프에 20-30만 원. 이 비율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스피커가 소리의 60-70%를 결정하기 때문에, 스피커에 예산을 더 많이 투자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이 예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한 가지 장비에 예산을 몰아주는 것보다, 세 가지 모두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는 게 훨씬 좋습니다. 예를 들어, 스피커에 80만 원을 쓰고 DAC와 앰프를 각각 10만 원으로 맞추면, 스피커의 성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없습니다. 반대로 DAC에 50만 원을 쓰고 스피커를 30만 원으로 맞추면, DAC의 성능이 낭비됩니다. PCfi는 체인입니다. 한 곳이 약하면 전체가 약해집니다.

또한 이 예산대에서는 케이블이나 받침대 같은 액세서리에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케이블로도 충분하고, 스피커는 그냥 책상 위에 놓아도 됩니다. 나중에 시스템이 더 좋아지면 그때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200만 원 전후: 거실급 시스템 or 프리미엄 데스크 시스템

200만 원 정도의 예산이라면, 선택지가 넓어집니다. 거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6~7인치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를 선택할 수도 있고, 데스크 시스템을 프리미엄급으로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스피커와 헤드폰을 모두 갖춰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거실급 시스템을 원한다면, 스피커에 120-150만 원, 앰프에 40-60만 원, DAC에 20~30만 원 정도를 배분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 정도 구성이면, 거실에서도 충분한 음압과 저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만 거실은 공간이 넓기 때문에, 스피커의 배치와 청취 위치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스피커라도, 벽에 너무 가깝게 붙이거나 소파에서 너무 멀리 떨어뜨려 놓으면 소리가 망가집니다.

프리미엄 데스크 시스템을 원한다면, 스피커에 100만 원, DAC에 50만 원, 앰프에 50만 원 정도로 배분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스튜디오 모니터급 스피커도 선택할 수 있고, DAC와 앰프도 충분히 좋은 제품을 고를 수 있습니다. 책상에서 이 정도 시스템을 갖춰놓으면, 웬만한 녹음 스튜디오 못지않은 디테일과 정확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예산대에서는 헤드폰을 함께 고려하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스피커에 150만 원, 헤드폰에 30만 원, DAC/앰프에 20만 원을 투자하면, 낮에는 스피커로, 밤에는 헤드폰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나의 DAC에 스피커 출력과 헤드폰 출력을 모두 연결해두면, 전환도 간단합니다.


300만 원 이상: 본격적인 오디오 시스템

300만 원 이상의 예산이라면, 이제 '입문'이 아니라 '본격적인' PCfi 시스템을 구성하는 단계입니다. 하이엔드 북셀프 스피커나 중형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프리미엄 DAC, 고출력 파워 앰프까지 모두 갖출 수 있습니다. 이 정도 구성이면, 전문 오디오 매장에서 듣던 소리를 집에서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예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비싼 장비'가 아니라 '시스템의 완성도'입니다. 좋은 스피커를 샀다면, 그 스피커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스피커 받침대, 흡음재, 스피커 배치, 청취 위치 같은 것들이 이제는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아무리 비싼 스피커라도, 방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으면 50만 원짜리 스피커보다 못한 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예산대에서는 '목적'이 명확해야 합니다. 클래식 감상이 목적이라면 넓은 사운드스테이지와 디테일을 중시하는 스피커를 선택해야 하고, 영화 감상이 목적이라면 다이내믹과 저음을 중시하는 스피커를 선택해야 합니다. 같은 300만 원이라도, 목적에 따라 구성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 정도 예산이면, 케이블과 액세서리에도 신경 쓸 여유가 생깁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균형이 중요합니다. 케이블에 100만 원을 쓰는 것보다, 그 돈으로 스피커나 앰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게 훨씬 더 큰 차이를 만듭니다. 케이블은 시스템이 완성된 후, 마지막 5%를 채우는 단계에서 고려해도 늦지 않습니다.

예산 배분의 황금 비율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스피커 60%, DAC 20%, 앰프 20%" 같은 황금 비율을 찾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런 비율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듣는 음악이 다르고, 공간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헤드폰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은 DAC/헤드폰 앰프에 예산을 더 많이 투자해야 합니다. 액티브 스피커를 사용하는 사람은 앰프를 따로 살 필요가 없으니, 그 예산을 스피커나 DAC로 돌릴 수 있습니다. 스트리밍만 사용하는 사람은 고해상도 DAC가 필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사용 패턴'입니다. 내가 어떻게 음악을 듣는지 정확히 알면, 예산 배분은 자연스럽게 결정됩니다. 남들이 추천하는 비율을 따라 하는 것보다, 내 상황에 맞는 나만의 비율을 찾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한 번에 완성하려 하지 말 것

PCfi를 시작할 때 가장 큰 실수는, 한 번에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추려는 것입니다. 200만 원 예산이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200만 원을 다 써버리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듣다 보면 취향이 바뀌고, 필요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더 현명한 방법은, 일단 60~70% 정도의 예산으로 기본 시스템을 구성하고, 몇 달 동안 사용해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음이 좀 부족한 것 같다", "고음이 좀 날카롭다", "밤에는 헤드폰이 필요하겠다" 같은 구체적인 니즈가 생깁니다. 그때 남은 예산으로 보완하면, 훨씬 만족도가 높은 시스템이 완성됩니다.

예를 들어, 200만 원 예산이 있다면 먼저 120만 원으로 스피커, DAC, 앰프를 갖추고, 남은 80만 원은 아껴둡니다. 몇 달 사용하다가 헤드폰이 필요하면 헤드폰을 사고, 저음이 부족하면 서브우퍼를 추가하고, 만족스러우면 그냥 그대로 두면 됩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접근하면, 불필요한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중고 시장도 하나의 선택지

PCfi 장비는 중고 시장이 잘 형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스피커와 앰프는 고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중고로 구매해도 성능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신품 가격의 60~70% 정도면 상태 좋은 중고 제품을 찾을 수 있고, 이걸 활용하면 같은 예산으로 한 단계 높은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중고 거래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스피커의 경우, 우퍼 유닛이 찢어지지 않았는지, 트위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지 않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앰프는 전원을 켰을 때 이상한 소음이 없는지, 볼륨을 올릴 때 좌우 밸런스가 맞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DAC는 USB 연결이 불안정하지 않은지, 잡음이 끼지 않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직거래로 실물을 확인하고, 실제로 소리를 들어본 후 구매하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그리고 중고로 산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비슷한 가격에 팔 수 있다는 것도 중고 시장의 장점입니다. 이렇게 몇 번 사고팔면서, 내 취향에 맞는 제품을 찾아가는 것도 PCfi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예산보다 중요한 것은 '만족의 기준'

결국 예산은 숫자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족하느냐'입니다. 50만 원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고, 500만 원을 써도 불만족할 수 있습니다. 차이는 예산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아는 것에 있습니다.

PCfi를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왜 PCfi를 하려고 하는가?" 좋은 소리로 음악을 듣고 싶어서? 오디오 장비 자체가 재미있어서? 조용한 취미가 필요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면, 예산은 자연스럽게 결정됩니다.

그리고 시작했다면, 남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누군가는 나보다 비싼 장비를 쓰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더 좋은 소리를 듣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 시스템에서 음악을 들을 때 행복하면, 그게 정답입니다.

PCfi는 끝이 없는 취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작이 가장 중요합니다. 처음에 제대로 된 방향을 잡으면,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불필요한 업그레이드에 시달리지 않고, 음악 자체를 즐기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PCfi가 주는 진짜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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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취향이 발견되고, 그것이 일상의 단단한 리듬이 되는 과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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