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맷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LP, CD, FLAC, 스트리밍. 이 네 가지 포맷은 서로 다른 시대에 등장했고, 각각의 등장 시점에서 이전 포맷을 대체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CD가 등장했을 때 LP는 사라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스트리밍이 등장했을 때 CD와 파일 음원이 무의미해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네 포맷은 모두 살아있습니다.
이 공존이 가능한 이유는 포맷이 단순히 음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포맷은 음악을 어떻게 소유하고, 어떻게 접근하며, 어떻게 경험하고 싶은가에 대한 선택입니다. 기술 사양으로 포맷을 비교하는 것은 출발점이지 결론이 아닙니다. 각 포맷이 담고 있는 특징을 이해할 때 선택이 더 명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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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가지 포맷은 서로 다른 시대에 등장했지만 지금도 모두 사용됩니다. 각각이 살아남은 이유가 있습니다. |
LP, 물리성이 만드는 의식의 무게
LP는 아날로그 시대의 포맷이지만 디지털 스트리밍이 지배하는 지금도 판매량이 늘고 있습니다. 기술적 열위에도 불구하고 LP가 살아남는 이유는 이전 글들에서 다룬 것처럼 테이프 포화에 준하는 아날로그 특성, RIAA 등화를 거친 자연스러운 주파수 특성, 그리고 마스터링 버전의 차이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술적 이유 이전에 LP가 제공하는 것이 있습니다. 청취라는 행위에 물리적 무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LP를 재생하려면 레코드를 꺼내고, 먼지를 닦고,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려야 합니다. A면이 끝나면 일어나서 뒤집어야 합니다. 이 과정의 번거로움이 역설적으로 청취의 집중도를 높입니다. 음악을 듣기로 결정했을 때 그 결정이 물리적 행위로 실현되는 구조입니다. 또한 LP는 앨범을 하나의 단위로 경험하도록 강제합니다. A면과 B면의 구성이 아티스트의 의도를 담고 있고, 임의로 건너뛰기 어려운 구조가 음악을 순서대로 듣는 습관을 만듭니다.
보존 측면에서 LP는 물리적 매체이기 때문에 적절한 관리 조건에서 수십 년이 지나도 재생이 가능합니다. 단, 재생 장비인 턴테이블과 카트리지가 존속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스크래치와 먼지에 취약하고 보관 공간이 필요하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LP가 담고 있는 철학은 소유의 실재성, 청취의 의식성, 그리고 음악과의 물리적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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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리 포맷의 보존성은 매체의 물리적 안정성과 재생 장비의 존속 여부에 함께 달려 있습니다. |
CD, 디지털 신뢰성의 표준
CD는 1982년 등장 이후 40년 이상 물리 매체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6bit/44.1kHz라는 규격이 임의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청각 특성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은 이전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기술적으로 CD는 지금도 충분합니다. 현실적인 청취 환경에서 16bit의 다이내믹 레인지와 44.1kHz의 주파수 재현은 대부분의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을 초과합니다.
CD의 핵심 가치는 신뢰성입니다. 한번 구입한 CD는 물리적으로 손상되지 않는 한 동일한 데이터를 영구적으로 보존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라이선스 만료나 서비스 종료로 갑자기 음원이 사라지는 일이 없습니다. 디지털 데이터이므로 리핑(ripping)을 통해 FLAC 파일로 변환해 백업할 수 있어, 물리 매체의 보존성과 디지털 파일의 접근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CD의 약점은 편의성입니다. 특정 트랙을 듣기 위해 CD를 찾고 플레이어에 삽입하는 과정은 스트리밍 시대의 즉각성과 대비됩니다. 또한 CD 플레이어 자체가 점차 소수 제품군으로 좁아지고 있어 장기적인 재생 환경 유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CD가 담고 있는 철학은 소유의 확실성, 데이터의 무결성, 그리고 물리 매체가 주는 안정감입니다.
FLAC, 소유와 접근성의 균형점
FLAC(Free Lossless Audio Codec)는 무손실 압축 포맷입니다. 원본 PCM 데이터를 손실 없이 압축하기 때문에, 압축 해제 후 CD 리핑 파일과 비트 단위로 동일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파일 크기는 WAV 대비 50~60% 수준으로 줄어들지만 음질은 동일합니다. 메타데이터 지원이 우수하고 오픈 소스 포맷이라는 점도 장기적인 호환성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FLAC의 실질적 이점은 소유의 자유도에 있습니다. 한번 구입하거나 리핑한 FLAC 파일은 어떤 기기에서도 재생할 수 있고, 서비스 종료나 라이선스 문제와 무관하게 영구적으로 보유할 수 있습니다. PCfi 환경에서 비트 퍼펙트 재생을 구현할 때 FLAC는 가장 직접적인 선택입니다. 재생 소프트웨어가 WASAPI 배타 모드나 ASIO를 통해 DAC에 신호를 전달하면, 원본 데이터가 변형 없이 재생됩니다.
FLAC의 약점은 탐색의 불편함입니다. 스트리밍처럼 새로운 음악을 즉시 찾아 들을 수 없습니다. 파일을 구입하거나 리핑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라이브러리 관리도 사용자의 몫입니다. Roon이나 JRiver Media Center 같은 소프트웨어가 이 관리를 도와주지만 별도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FLAC가 담고 있는 철학은 데이터 완전성에 대한 신뢰, 플랫폼 독립성, 그리고 능동적 음악 관리입니다.
스트리밍, 접근성이 최대화된 포맷
스트리밍은 세 포맷과 근본적으로 다른 전제 위에 있습니다. 소유가 아닌 접근입니다. 월정액을 지불하는 동안 수천만 곡에 접근할 수 있지만, 서비스를 해지하거나 라이선스가 만료되면 그 음악은 사라집니다. 이 전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가 스트리밍을 주력으로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기술적 측면에서 스트리밍의 음질은 서비스와 구독 등급에 따라 다릅니다. Spotify의 무손실 스트리밍(Spotify HiFi), Apple Music Lossless, Tidal HiFi는 FLAC와 동등한 무손실 품질을 제공합니다. 이 수준의 스트리밍과 로컬 FLAC 파일의 음질 차이는 재생 경로와 DAC 품질에 달려 있지, 포맷 자체의 차이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비트 퍼펙트 재생이 가능한 환경에서 무손실 스트리밍은 로컬 파일과 청감 차이가 없습니다.
스트리밍의 실질적 강점은 탐색과 발견입니다. 새 아티스트를 찾고, 다른 장르를 시험해보고, 특정 곡을 즉시 확인하는 데 스트리밍만큼 효율적인 수단은 없습니다. 이 접근성이 오디오 소비 문화 전체를 바꿨습니다. 그러나 앞선 글에서 다룬 것처럼 알고리즘 추천이 청취 폭을 좁히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스트리밍의 구조적 한계로 남아 있습니다. 스트리밍이 담고 있는 철학은 소유보다 경험, 깊이보다 넓이, 그리고 즉각적인 접근입니다.
보존 관점에서 네 포맷을 비교하면
음악을 장기적으로 보존한다는 관점에서 네 포맷을 비교하면 각각의 리스크 성질이 다릅니다.
LP는 물리적 손상이 주된 리스크입니다. 스크래치, 뒤틀림, 보관 환경의 온습도가 레코드의 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손상되지 않은 LP는 재생 장비가 존재하는 한 언제든 재생할 수 있습니다. 수십 년 전 녹음이 지금도 원본 그대로 재생 가능한 것이 LP의 보존 강점입니다.
CD는 디스크 표면의 산화와 레이어 분리(disc rot)가 장기적인 리스크입니다. 잘 보관된 CD의 수명은 100년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제조 품질에 따라 편차가 있습니다. 디지털 데이터를 리핑해 여러 매체에 백업하면 보존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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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맷의 선택은 기술 조건만큼이나 음악을 어떻게 경험하고 싶은가를 반영합니다. |
FLAC는 저장 매체의 물리적 수명과 파일 시스템 접근성이 리스크입니다. 하드 드라이브나 SSD는 LP나 CD보다 물리적 수명이 짧습니다. 그러나 복수의 매체에 백업하고 클라우드 스토리지를 병행하면 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파일 포맷의 호환성도 고려 사항입니다. FLAC는 오픈 소스 포맷이라 장기적인 지원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수십 년 후의 소프트웨어 환경에서 현재 포맷이 그대로 지원될 보장은 없습니다.
스트리밍은 서비스 종속이 핵심 리스크입니다. 플랫폼의 라이선스 계약 변화, 서비스 종료, 구독 해지가 모두 음악 접근성을 즉시 차단합니다. 보존이라는 개념 자체가 스트리밍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포맷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현실적 접근
네 포맷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실제로 깊이 있는 청취자 대부분은 두 가지 이상의 포맷을 목적에 맞게 병행합니다.
스트리밍은 탐색과 발견에 활용합니다. 새 아티스트를 찾고, 앨범 전체를 한 번 훑어 듣고, 특정 곡을 확인하는 데 가장 효율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말 오래 듣고 싶은 앨범을 발견하면 CD나 LP 또는 FLAC 파일로 소유로 전환합니다.
FLAC는 PCfi 시스템의 주력 재생 소스로 활용합니다. CD에서 리핑하거나 구입한 파일을 로컬 라이브러리에 정리해 두고 비트 퍼펙트 재생 환경에서 사용합니다. 스트리밍과 달리 네트워크 상태나 서버 상황에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재생됩니다.
LP는 특별한 청취를 위한 매체로 위치시킵니다. 모든 음악을 LP로 듣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앨범, 마스터링 버전이 LP에서 더 좋은 것으로 알려진 음반, 또는 재발매 버전의 수집 대상을 LP로 갖추는 방식입니다.
CD는 FLAC 소스이자 물리적 아카이브로 기능합니다. 구입한 CD를 리핑해 FLAC 파일을 만들고, CD 자체는 백업 원본으로 보관합니다.
LP, CD, FLAC, 스트리밍은 음질 경쟁 관계가 아닙니다. 각 포맷은 소유, 접근성, 청취 방식, 보존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LP는 청취의 의식성과 물리적 소유를, CD는 디지털 신뢰성과 데이터 무결성을, FLAC는 플랫폼 독립적인 완전한 소유를, 스트리밍은 소유보다 접근과 발견을 중심에 둡니다.
포맷을 선택하는 것은 음악을 어떻게 경험하고 싶은가에 대한 답입니다. 어느 포맷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청취 습관, 시스템 구성, 음악과의 관계 방식을 먼저 정의하면 어떤 포맷이 그 방향에 맞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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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b 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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