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sens infeed Desk

파피용 - 베르베르가 그린 우주 SF 걸작의 모든 것

GentlemanVibe

모르던 나의 취향이 일상의 취미로 새겨지는 시간의 기록


파피용 - 우주로 날아오른 인류 최후의 희망

황폐해진 지구를 등지고 우주로 날아오른 14만 4천 명의 마지막 지구인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글을 쓰고, 프랑스의 거장 만화가 뫼비우스가 그림을 그린 『파피용』은 인류의 진화와 미래를 다룬 장대한 SF 소설입니다. 2007년 출간 당시 4개월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한국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스테디셀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파피용'은 프랑스어로 '나비'라는 뜻입니다. 태양풍을 추진력으로 삼는 거대한 돛을 펼친 우주선의 모습이 나비와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죠. 이 책은 단순한 우주 모험담을 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파피용 책 표지,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뫼비우스 그림, 열린책들 출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SF 소설 『파피용』
표지로, 거장 만화가 뫼비우스의 일러스트가 담겨 있습니다.



지구의 종말, 그리고 마지막 희망

지구가 위태롭습니다. 환경 오염, 전쟁, 질병, 자원 고갈. 인류는 스스로 만든 재앙으로 멸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런 인류를 구하기 위해 한 항공 우주 엔지니어 이브 크라메르가 태양빛을 추진 동력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우주선에 14만 4천 명의 지구인을 태우겠다는 꿈을 꿉니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이 계획은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됩니다. 발명가 이브를 중심으로 억만장자 맥 나마라, 생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바이스, 항해 전문가 말로리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모입니다. 그들은 인류의 미래를 건 이 대담한 도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합니다.

우주선 파피용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40제곱킬로미터 넓이의 거대한 돛을 달고, 도시 하나와 맞먹는 크기로 설계된 이 우주 범선은 인류가 만든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입니다. 여행 기간은 1252년, 거리는 20조 킬로미터. 목적지는 지구로부터 아득히 먼 곳에 위치한, 생명체가 살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지의 행성입니다.

14만 4천 명이라는 숫자도 의미심장합니다. 이 숫자는 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구원받을 자들의 수와 일치하는데, 베르베르는 이를 통해 파피용 프로젝트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일종의 구원이자 새로운 시작임을 암시합니다.


우주선 안에서 펼쳐지는 인류 역사의 재현

소설은 크게 세 부로 나뉩니다. 제1부 '희미한 꿈'에서는 프로젝트의 시작과 우주선 건조 과정, 탑승자 선발 과정이 그려집니다. 제2부 '우주 속의 마을'에서는 본격적인 우주 항해가 시작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전개됩니다. 제3부 '낯선 행성에의 도착'에서는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2부가 이 소설의 핵심입니다. 희망과 이상을 품고 출발한 14만 4천 명의 사람들. 그들은 새로운 세계에서 지구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민주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평화롭게 살며, 1천 년이 넘는 긴 여정 동안 지식과 문화를 보존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입니다. 시간이 지나자 도박과 음주가 시작됩니다. 일부 대원들은 우주선의 규율에 반발하며 이탈을 시도합니다. 이탈자들을 이끈 주동자의 이름은 사틴. 그는 우주선 내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1세대가 죽고 2세대, 3세대로 이어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출발 당시 민주정이었던 체제는 놀랍게도 2세대에서 이미 왕정으로 바뀝니다. 전제군주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스스로를 '엘레'라고 칭합니다. 이는 수메르-히브리 창조주의 이름 '엘'이 되는 설정인데, 베르베르는 이를 통해 인류의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암시합니다.

우주선을 비추는 등불들은 전쟁으로 하나씩 깨져나갑니다. 인간이 지구에서 반복했던 악습들 - 권력 투쟁, 전쟁, 학살, 차별 - 이 모든 것이 우주선 안에서 그대로 재현됩니다. 1200여 년 동안 인구의 대부분이 사망하고,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여자 한 명과 남자 다섯 명뿐입니다.

충격적인 반전, 그리고 순환하는 역사

목적지 행성에 도착한 생존자들 중 아드리앵이라는 남자와 엘리트라는 여자가 함께 새로운 땅에 발을 딛습니다. 그곳에는 공룡과 비슷한 생물들이 살고 있었지만, 인간들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모두 전멸합니다. 대신 아드리앵과 엘리트는 우주선에 유전자 상태로 보관되어 있던 지구 생물들을 복제기로 번식시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성관계 체위 문제로 심각한 다툼을 벌입니다. 외경에서 두 사람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여자는 놀랍게도 릴리스, 남자는 아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들이죠. 둘이 다툰 이유 중에는 그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것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여자는 사망 당시 임신한 상태로 발견됩니다.

홀로 남겨진 아드리앵은 어쩔 수 없이 우주선의 생명 복제 장치로 새로운 여자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골수가 필요해서 자신의 뼈를 떼어내야 하는데, 생명과 생활에 지장이 없는 수준에서 떼어낼 수 있는 뼈가 무엇일까 깊이 생각한 끝에 갈비뼈라고 판단합니다. 성경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든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었던 겁니다.

새로 만들어진 여자의 이름은 에야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난청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이름을 에바라고 잘못 듣습니다. 아드리앵이 들려주는 우주선의 역사를 외우면서도 이름들을 전부 자기 식으로 바꿔버립니다. 아드리앵은 아담이 되고, 엘리트는 릴리스가 되며, 사틴은 사탄이 됩니다.

우주선에서는 공간 문제 때문에 모든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렀는데, 맨 처음 선택된 나무가 사과나무였습니다. 이것이 에바의 머릿속에서는 선악과가 됩니다. 베르베르는 이렇게 성경의 창세기와 묵시록을 연결하며, 인류의 시작과 끝이 돌고 도는 순환 구조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베르베르 유니버스의 기원

이 소설에는 베르베르의 다른 작품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이지도르 카첸버그가 언급됩니다. 그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저자 에드몽 웰즈와 함께 베르베르 작품 세계의 핵심 인물입니다. 사과나무 속에 백과사전이 보관되어 있다는 설정도 등장하는데, 이는 베르베르 유니버스 전체를 관통하는 장치입니다.

실제로 베르베르의 또 다른 작품 『카산드라의 거울』에 등장하는 인류가 바로 파피용의 시조 인류의 후손이라는 설정입니다. 물론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파피용을 읽지 않아도 카산드라의 거울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면 베르베르가 구축한 거대한 세계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뫼비우스의 환상적인 일러스트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프랑스의 거장 만화가 뫼비우스가 그린 일러스트입니다. 뫼비우스는 베르베르의 전작 『나무』에도 삽화를 그렸는데, 파피용에서는 한국어판 독점 일러스트를 작업했습니다. 그의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은 우주선 파피용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완벽하게 표현해냅니다.

태양풍을 받으며 우주를 날아가는 나비 모양의 거대한 우주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낯선 행성의 풍경. 뫼비우스의 그림은 독자들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글로만 읽어서는 충분히 느낄 수 없는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며, 작품의 몰입도를 한층 높여줍니다.

과학과 문학의 완벽한 결합

베르베르는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을 씁니다. 태양풍을 이용한 솔라 세일 우주선 개념은 실제로 연구되고 있는 기술입니다. 세대 우주선(Generation Ship) 아이디어 역시 SF 문학에서 오래전부터 다뤄온 소재이지만, 베르베르는 여기에 인간의 본성과 역사의 순환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결합시킵니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이 소설에 나온 가설들을 바탕으로 실제로 우주선을 제작하기 위한 사이트가 개설되기도 했습니다. 첫 출간 당시 『렉스프레스』지는 이 작품을 두고 베르베르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주제들을 효과적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매력적인 판타지 소설이라고 평했습니다.

물론 SF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세대 우주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진부한 소재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SF 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설정입니다. 베르베르의 진짜 강점은 과학적 정확성보다는, 그 과학적 설정을 인간 드라마와 철학적 질문으로 풀어내는 능력에 있습니다.


인간은 과연 변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은 과연 과거의 실수에서 배울 수 있는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면 우리는 달라질 수 있는가?

파피용의 승객들은 지구의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들은 선별된 사람들이었고,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겠다는 이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그들은 우주선 안에서 인류가 지구에서 저질렀던 모든 실수를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베르베르는 이를 통해 말합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에 있다고. 아무리 좋은 환경, 아무리 이상적인 조건이 주어져도,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역사는 반복된다고. 권력에 대한 욕망, 타인에 대한 폭력성, 차이에 대한 불관용. 이런 것들이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동시에 이 소설은 희망도 이야기합니다. 비록 대부분이 실패했지만, 아드리앵과 에야는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를 배우고, 다시 한번 인류 문명을 건설할 기회를 얻습니다. 역사는 순환하지만, 그 순환 속에서 조금씩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성경과의 연결고리

이 소설에서 성경과의 연결고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14만 4천 명이라는 숫자, 아담과 이브, 릴리스와 사탄, 선악과, 엘이라는 신의 이름. 이 모든 요소들이 성경의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연상시킵니다.

베르베르는 이를 통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합니다. 만약 성경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은 우주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와전된 것은 아닐까? 아담과 이브는 외계에서 온 우주 탐험가였고, 에덴동산은 그들이 발견한 새로운 행성이었으며, 신은 그들이 타고 온 우주선의 승무원들이 만든 개념이 아니었을까?

이런 해석은 매우 도발적입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불경스러울 수도 있지만, SF적 상상력으로 보면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베르베르는 과학과 종교, 신화와 역사를 하나로 엮으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번역의 변화

흥미롭게도 『파피용』은 베르베르의 전작들을 번역했던 이세욱이 아닌, 전미연 번역가가 처음으로 맡은 작품입니다. 이세욱의 번역은 『개미』를 초월번역으로 만들며 억대 연봉 번역가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호평받았기에, 팬들은 번역가 변경에 대해 우려했습니다.

다행히 전미연 번역가도 훌륭한 번역을 선보였고, 2023년 리뉴얼판에서도 계속 번역을 맡았습니다. 새로운 판형과 장정으로 단장한 리뉴얼판은 맞춤법 변화도 반영하고, 책의 만듦새를 더욱 가볍고 현대적으로 만들면서도 뫼비우스의 일러스트는 그대로 살려 작품의 매력을 유지했습니다.


"파피용 우주선 일러스트, 뫼비우스 그림, 나비 모양 태양풍 범선"
뫼비우스가 그린 우주선 파피용의 모습은 나비 입니다.
40제곱킬로미터의 거대한 돛을 펼친
나비 형상이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희망은 계속된다

『파피용』은 단순한 SF 소설이 아닙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역사는 반복되는가 진화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 드라마는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1252년이라는 긴 여정, 20조 킬로미터라는 상상할 수 없는 거리. 하지만 진짜 여정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변화입니다. 파피용호는 단순히 우주를 날아가는 배가 아니라, 인류가 자신의 본성과 싸우며 진화를 향해 나아가는 은유입니다.

책을 덮고 나면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정말로 지구가 멸망 위기에 처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운 별을 찾아 떠날 것인가, 아니면 지구에 남아 끝까지 싸울 것인가? 그리고 만약 떠난다면, 우리는 정말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베르베르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을 던지고,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좋은 SF의 역할이 아닐까요? 우리에게 거울을 보여주고, 우리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

『파피용』은 2007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 이 작품의 힘은, 바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미래에 대한 끝없는 상상력에서 나옵니다. 우주로 날아오른 나비, 파피용은 오늘도 어딘가에서 날개를 펼치고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싣고서.

GentlemanVibe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