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와 벽 사이, 그 애매한 틈을 볼 때마다
냉장고를 놓고 나면 꼭 남는 자리가 있습니다. 폭 30cm 남짓, 뭘 놓기엔 좁고 그냥 비워두기엔 아까운 틈이죠. 이 틈을 볼 때마다 뭔가 채워 넣고 싶은데, 막상 시중 수납장은 대부분 40cm를 훌쩍 넘어가서 들어가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케아 로그룬드 대나무 트롤리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싶습니다. 폭 42cm, 깊이 33cm, 높이 76cm. 숫자만 보면 평범한데, 이 폭이 바로 그 애매한 틈새를 채우는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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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cm 폭 하나로 자투리 공간의 쓰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
사실 이 트롤리, 원래는 욕실 가구였습니다
먼저 정확히 짚고 가겠습니다. 로그룬드 트롤리는 이케아 공식 설명상 욕실 컬렉션에 속하는 제품입니다. 습기에 강한 대나무 소재를 살려 욕실에서 쓰라고 만든 가구예요. 청소용품이나 수건을 올려두는 용도로 설계됐다는 뜻이죠.
그런데 실제로는 주방으로 데려오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3단으로 뚫린 오픈 선반 구조에 캐스터 바퀴까지 달려 있으니, 용도만 놓고 보면 욕실이든 주방이든 다용도 카트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거든요. 다만 "이케아가 주방용으로 만든 가구"라고 소개하는 건 정확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오히려 이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욕실용으로 나온 물건이 주방 틈새에서 더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는 건, 결국 가구를 고르는 기준이 "어디서 팔리는 물건인가"가 아니라 "이 공간의 치수에 맞는가"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니까요.
42cm라는 폭이 특별한 이유
주방 틈새 수납장을 찾아본 적이 있다면 아실 텐데, 30~35cm 폭짜리 협소 수납장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40cm 이상이거나, 아니면 20cm 초반의 초협소 사이즈로 극단적으로 갈리거든요. 42cm는 그 사이 어중간한 자리를 정확히 노리는 폭이에요.
이 폭이 통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냉장고 옆 틈새는 대개 냉장고 문 여닫는 반경을 고려해서 남겨두는 여유 공간인데, 이 여유가 보통 40~45cm 사이로 잡히거든요. 로그룬드의 42cm는 이 범위에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깊이 33cm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수대 옆이나 조리대 끝 자투리 공간은 보통 조리대 깊이(60cm 안팎)보다 얕게 남는데, 33cm면 동선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은 확실히 남기는 깊이더라고요.
주방에서 이 폭이 통하는 자리
구체적으로 어디에 놓으면 좋을지 그려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자리는 냉장고와 벽 사이입니다. 이 틈에 트롤리를 세워두면 생수병이나 자주 쓰는 조미료를 눈높이에 맞춰 꺼내 쓸 수 있는 자리가 생기죠.
두 번째는 개수대 옆입니다. 세제나 수세미, 고무장갑처럼 물기가 닿아도 상관없는 물건들을 올려두기에 딱 좋은 위치예요. 대나무 특유의 방수 래커 마감이 이 자리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동합니다.
세 번째는 아일랜드 식탁 옆 짧은 동선입니다. 손님상을 차릴 때 반찬 그릇을 잠시 올려두거나, 커피 도구를 한데 모아두는 이동식 스테이션으로 쓰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바퀴가 달려 있어서 필요할 때만 끌어다 쓰고 다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자리와 잘 맞습니다.
배치 전에 반드시 재봐야 할 것들
다만 무작정 주문부터 하는 건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폭 42cm가 대부분의 틈새에 맞는다는 뜻이지, 모든 틈새에 맞는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주문 전에 아래 항목만큼은 실측으로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 냉장고 문을 완전히 열었을 때 트롤리 폭(42cm)을 침범하지 않는지
- 바닥에서 상부장 하단까지 높이가 76cm보다 여유 있는지
- 바퀴가 지나갈 바닥재가 대리석이나 원목처럼 무른 소재는 아닌지
- 깊이 33cm를 더했을 때 주방 주 동선(사람이 지나다니는 폭)이 60cm 이하로 좁아지지는 않는지
특히 동선 폭은 놓치기 쉬운데요, 트롤리 하나 들였을 뿐인데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가기 불편해졌다면 그건 수납이 아니라 장애물이 된 겁니다. 재보는 데 5분이면 충분하니, 이 과정은 건너뛰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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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크대 옆 자투리 폭에도 어색함 없이 맞아떨어집니다. |
대나무 소재, 주방 톤과는 어떻게 어울릴까
소재 이야기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대나무는 오크나 월넛 같은 목재 계열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색은 더 밝고 균일하며, 표면에 옅은 세로 결이 촘촘하게 반복되는 느낌이거든요. 화이트나 라이트오크 톤 주방에 놓으면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편입니다.
반대로 월넛이나 다크 톤 원목 가구가 많은 주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밝은 대나무 색이 상대적으로 튀어 보일 수 있거든요. 이런 공간이라면 트롤리 위에 올려두는 소품(그릇, 바구니 등)을 어두운 톤으로 맞춰서 균형을 잡아주는 편이 낫습니다.
표면은 투명 아크릴 래커로 마감돼 있어서 광택이 은은하게 도는데, 이 광택 덕분에 조명 아래에서 밋밋해 보이지 않습니다. 젖은 행주로 닦아내는 정도로 관리가 끝난다는 점도 주방이라는 공간과 잘 맞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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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끈한 래커 마감 아래로 대나무 특유의 결이 살아 있습니다. |
3단 구조, 실제로는 이렇게 채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실전 활용법입니다. 3단을 그냥 아무렇게나 채우면 금세 잡동사니 선반처럼 보이기 쉬운데요, 층마다 역할을 나눠주면 훨씬 정돈된 인상을 줍니다.
상단은 매일 손이 가는 것, 그러니까 자주 쓰는 조미료나 커피 도구처럼 꺼내기 쉬워야 하는 물건 자리로 비워두시길 권합니다. 중단은 반쯤 숨겨도 되는 것들, 세제나 여분 그릇처럼 매일은 아니어도 자주 쓰는 물건을 담기에 적당합니다.
하단은 무게가 있는 물건, 예를 들어 생수 묶음이나 식재료 박스처럼 무게 중심을 낮춰야 하는 것들을 놓으세요. 바퀴가 달린 가구는 무게 중심이 낮을수록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움직이거든요. 이 순서만 지켜도 트롤리 하나가 훨씬 정돈되어 보입니다.
좁은 틈이라고 그냥 지나치기엔, 이 정도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폭을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 냉장고 옆 그 틈부터 한번 재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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