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600 앰프 없이 써도 될까: 직결 소리의 현실

HD600을 직결로 꽂았을 때 들리는 소리

HD600을 처음 구매하고 노트북 헤드폰 단자에 바로 꽂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박스를 열고 음악을 틀어보면 소리는 납니다. 볼륨을 80~90%까지 올리면 음량도 어느 정도 확보됩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기대했던 것과 다릅니다. 리뷰에서 말하던 "넓은 공간감", "분리도 높은 악기 배치"가 들리지 않습니다. 저음은 납작하고 얇으며, 보컬은 뒤로 물러나 있고, 전체적으로 무언가 억눌린 듯한 소리가 납니다. HD600이 별로라는 것이 아닙니다. HD600이 아직 제대로 울리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오픈백 헤드폰과 소형 DAC 앰프가 함께 놓인 미니멀 우드 데스크 클로즈업
HD600의 잠재력은 앰프를 만나야 비로소 열린다


300옴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

HD600의 임피던스는 300옴입니다. 임피던스는 헤드폰이 전기 신호에 저항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숫자가 높을수록 헤드폰을 움직이는 데 더 많은 전압과 전류가 필요합니다. 일반적인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헤드폰 단자의 출력 임피던스는 1~10옴 수준이고, 설계상 16~32옴짜리 이어폰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HD600의 300옴을 제대로 구동하려면 이보다 훨씬 높은 전압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출력단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자주 생기는 오해가 있습니다. "볼륨을 최대로 올리면 충분하지 않냐"는 질문입니다. 볼륨을 올리면 음량은 커집니다. 하지만 음량이 충분하다는 것과 헤드폰이 제대로 구동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구동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볼륨만 올리면 앰프 내부의 왜곡이 증가하고, 진동판이 신호를 정확하게 따라가지 못해 저음의 탄력이 사라지고 음상이 흐릿해집니다. 최대 볼륨에서도 음량이 간신히 확보되는 상태라면 앰프는 이미 한계 근처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직결하면 실제로 어떤 소리가 나는가

헤드폰 3.5mm 잭을 포터블 DAC에 연결하는 클로즈업
직결 상태에서 HD600은 볼륨과 구동력 모두 본래 설계치에 미치지 못한다


스마트폰이나 일반 노트북에 HD600을 직결했을 때의 소리를 청음 언어로 묘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음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타격감이 없고 표면만 훑고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베이스라인이 분명해야 할 구간에서 소리가 몽글몽글하게 뭉칩니다. 중역대 악기 분리도가 낮아서 여러 악기가 동시에 나오는 구간에서 각 악기의 위치와 질감이 겹칩니다. 보컬은 선명도가 떨어지고 다른 악기 뒤로 한 발 물러선 것처럼 들립니다. 고역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지만 전체적인 음장이 좁고 납작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HD600이 나쁜 헤드폰이라서 생기는 현상이 아닙니다. 출력이 부족한 소스에서는 음선이 얇아지고 저음이 흩어지는 현상이 이 임피던스 대역 헤드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직결 상태에서 HD600을 듣고 실망해서 중고로 내놓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HD600의 중고 매물이 많은 것도 이 구조적 이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출력이 비교적 강한 DAP(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의 밸런스 출력(4.4mm 또는 2.5mm)을 사용하거나, 헤드폰 출력이 특별히 강화된 노트북 또는 메인보드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직결에서도 어느 정도 구동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전용 앰프를 연결했을 때와 비교하면 저음 밀도와 다이내믹 레인지에서 체감 차이가 납니다.

앰프를 연결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전용 헤드폰 앰프 또는 DAC 앰프 콤보를 연결하면 HD600은 다른 헤드폰처럼 들리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저음입니다. 직결 상태에서 납작하게 눌려 있던 저음이 단단한 타격감을 되찾습니다. 베이스라인이 윤곽 없이 뭉치던 현상이 사라지고 각 음의 어택과 디케이가 명확해집니다. 중역대 악기 분리도도 함께 살아납니다. 피아노 화음에서 각 음이 분리되어 들리고, 현악기와 관악기가 겹치는 구간에서 각 악기의 공간적 위치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HD600은 '젠하이저 베일'이라고 불리는 다소 어둡고 막이 낀 듯한 음색이 있다는 평이 있습니다. 이 특성이 앰프를 연결하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구동력이 충분해지면 중고역 선명도와 공간감이 올라오면서 이 특성이 훨씬 덜 두드러집니다. 플랫하고 레퍼런스적인 성향이 제대로 구현되면서 다양한 장르에서 고르게 정보량이 높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얼마짜리 앰프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오픈백 헤드폰을 착용하고 DAC 앰프 데스크 셋업 앞에서 음악을 즐기는 20대 여성
HD600은 적절한 입문 DAC 앰프 하나만으로도 본래 설계된 소리를 낸다


HD600 입문자에게 가장 많이 나오는 후속 질문이 이것입니다. 앰프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얼마짜리를 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HD600을 제대로 구동하기 위해 고가의 앰프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10~20만 원대 DAC 앰프 콤보 제품으로도 HD600의 본래 소리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HD600 입문 매칭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제품군은 FiiO K7, Topping DX3 Pro+, SMSL SH-6 계열입니다. FiiO K7은 알루미늄 바디에 균형 잡힌 음색과 충분한 출력을 갖춘 DAC 앰프 콤보로 HD600 구동에 여유가 있고, HD600의 따뜻한 중역 성향과 잘 어울린다는 평이 많습니다. Topping DX3 Pro+는 ESS DAC 칩의 선명하고 디테일한 성향으로 HD600의 정보량을 잘 끌어내지만, HD600의 어두운 음색이 다소 밝아지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취향에 따라 평가가 갈립니다. 두 제품 모두 HD600을 볼륨 절반 이하에서도 충분한 구동력으로 울릴 수 있습니다.

앰프 선택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C 온보드 사운드 카드에서 앰프로만 신호를 받으면 소스의 노이즈와 음질 한계가 그대로 증폭됩니다. DAC(디지털-아날로그 변환기) 기능이 포함된 제품을 선택하거나, USB로 PC에 연결해 디지털 신호를 받아 처리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DAC 앰프 콤보 제품이 입문자에게 권장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HD600은 비용 대비 어떤 위치에 있는가

HD600 본체 가격은 현재 30만 원 초중반대입니다. 여기에 10~15만 원대 DAC 앰프를 더하면 총 투자금이 45~50만 원 수준이 됩니다. 이 금액으로 구성할 수 있는 헤드폰 시스템 중에서 HD600 플러스 입문 앰프의 조합은 음질 대비 가격 효율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합니다. 앰프 없이 직결로만 사용한다면 동일 금액으로 더 쉽게 구동되는 다른 헤드폰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HD600은 앰프를 전제로 설계된 헤드폰이고, 그 전제가 충족됐을 때 이 가격대에서 넘어서기 어려운 소리를 냅니다. 앰프 포함 예산으로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는 것, 그것이 HD600을 제대로 경험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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