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선 이어폰이 이렇게 좋아진 시대에 유선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에어팟 프로는 노이즈 캔슬링도 되고, 케이스에서 꺼내는 순간 자동으로 연결된다. 줄이 없으니 운동할 때도 자유롭고, 잃어버리는 것 빼고는 딱히 불편한 게 없다. 그런데 이 편리함을 알면서도 유선 케이블을 정성스럽게 감아 파우치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상한 고집이 아니다. 그 선택에는 기술적 근거도 있고, 오디오라는 취미가 가진 특유의 감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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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케이블 한 가닥 안에 유선 오디오의 철학 전부가 담겨 있다. |
무선 오디오의 기술적 천장
블루투스 오디오는 지난 10년간 눈부시게 발전했다. aptX HD, LDAC, LC3plus 같은 고음질 코덱들이 등장하면서 무선 전송 품질이 크게 올라왔다. 그러나 무선 전송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블루투스는 데이터를 압축해서 전송한다. LDAC가 최대 990kbps의 전송 속도를 지원하고, LC3plus가 낮은 지연 시간으로 안정성을 높였다고 해도, 무손실 오디오 파일의 원본 데이터량과 비교하면 여전히 압축이 개입한다.
16bit/44.1kHz CD 품질의 스테레오 오디오는 비압축 상태에서 초당 약 1,411kbps의 데이터가 흐른다. LDAC의 최대 전송 속도인 990kbps는 이 기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사용 환경에서 LDAC는 전파 간섭과 기기 간 거리 변화에 따라 자동으로 660kbps 또는 330kbps로 전환된다. 음질이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구조다. 유선 연결은 이런 변수가 없다. 물리적으로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신호가 그대로 흐른다. 코덱도 없고, 재압축도 없고, 전파 환경의 영향도 없다.
배터리가 없다는 것의 의미
무선 이어폰의 가장 큰 약점은 오디오 기술과 무관한 곳에 있다. 배터리다. 아무리 좋은 드라이버를 탑재하고 있어도 배터리가 방전되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배터리는 반드시 열화된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충방전을 반복할수록 용량이 감소한다. 2년, 3년 후 처음 구입했을 때의 재생 시간을 기대하기 어렵다.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고가의 무선 이어폰도 소모품이 된다.
유선 이어폰은 배터리가 없다. 케이블이 물리적으로 손상되지 않는 한, 드라이버는 계속 작동한다. 20년 전에 출시된 젠하이저 HD600이 지금도 현역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드라이버 자체의 수명은 사용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전자 부품의 열화 문제가 없는 유선 구조는 관리만 제대로 하면 수십 년이 지나도 같은 소리를 낸다. 오디오 마니아들이 고가의 유선 이어폰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영속성이다.
리케이블: 소리를 바꾸는 즐거움
유선 이어폰에는 무선이 줄 수 없는 독특한 즐거움이 있다. 케이블 교체, 이른바 리케이블이다. 대부분의 하이엔드 유선 이어폰은 케이블을 분리해 교체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MMCX, 2핀, A2DC 같은 커넥터 규격을 통해 서드파티 케이블을 연결할 수 있다.
케이블 소재와 구조가 소리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오디오 커뮤니티 내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 왔다. 측정값으로 확인 가능한 수준의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도체 소재에 따른 임피던스 변화, 접촉 저항의 차이, 그리고 외부 노이즈 차폐 능력의 변화는 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영역이다. OFC 동선에서 단결정 은선으로 교체했을 때 중고역의 투명도가 올라가는 경험을 하는 사용자들이 많고, 이를 두고 플라시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리케이블은 같은 이어폰으로 다른 소리를 탐구하는 행위다. 이어폰 본체를 바꾸지 않고도 시스템의 성격을 조금씩 조정할 수 있다. 4.4mm 밸런스드 케이블로 교체해 포터블 DAC의 밸런스드 출력을 활용하거나, 8심 구조의 케이블로 채널 분리도를 높이거나, 은 도금 케이블로 고역의 공기감을 더하거나. 이 선택지의 다양함 자체가 하나의 취미 영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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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선택지는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무엇을 우선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
무선이 대체하지 못하는 청취 경험
노이즈 캔슬링은 무선 이어폰이 유선보다 앞서는 몇 안 되는 영역 중 하나다. 그러나 음질에 집중하는 청취 환경에서는 노이즈 캔슬링보다 이어폰 자체의 물리적 차폐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밀폐형 BA 이어폰이나 귀 깊숙이 삽입되는 IEM은 수동 차폐만으로도 외부 소음을 충분히 줄인다. 능동 노이즈 캔슬링이 만들어내는 압박감이나 낮은 주파수의 잡음이 없는 상태에서, 이 물리적 차폐 환경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청취 조건을 만든다.
공간음향, 헤드 트래킹, 스마트 기능 — 무선 이어폰이 더하는 기능들은 청취 경험을 풍부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신호 처리의 레이어를 추가한다. 공간음향 처리는 원본 신호를 가공하고, 헤드 트래킹은 지속적인 연산을 요구하며, 스마트 기능들은 배터리를 소모한다. 유선 이어폰은 이 모든 레이어가 없다. DAC에서 나온 신호가 케이블을 통해 드라이버로 직접 전달된다. 신호 경로의 단순함이 음질의 순수함으로 이어진다.
유선 이어폰을 꽂는다는 것의 의례
오디오 마니아들이 유선 이어폰을 고집하는 이유 중에는 기술적 근거 이외의 것도 있다. 이어폰을 꺼내 케이블을 풀고, DAC에 연결하고, 귀에 맞게 조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청취를 위한 일종의 준비 의식이 된다. 이 번거로움이 역설적으로 음악에 집중하게 만든다. 에어팟처럼 귀에 넣는 순간 자동으로 재생되는 편리함과는 다른 종류의 경험이다.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리는 행위, 카세트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르는 행위가 그 음악을 듣는 경험의 일부였듯, 유선 이어폰을 정성스럽게 연결하는 과정도 청취 경험의 서막이 된다. 이것을 불편함으로 볼 것인가, 의례로 볼 것인가. 그 시각의 차이가 유선과 무선 사이의 선택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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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폰을 꽂는 그 몇 초가 이미 음악의 시작이다. |
무선 이어폰이 나쁜 것이 아니다. 편리함과 기동성에서 무선은 분명히 앞선다. 유선을 선택하는 것은 그 편리함을 포기하고 얻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판단이다. 그 무언가가 순수한 음질인지, 리케이블의 즐거움인지, 아니면 이어폰을 꽂는 그 몇 초의 의례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지금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이 무선이라면, 마지막으로 유선 이어폰을 진지하게 들어본 것이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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